버리는 옷 VS 버려지지 않는 옷
우리가 입는 옷은 어디에서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도착할까요? 라벨에 적힌 ‘MADE IN ○○○’에서는 세계 각국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 바로 옆의 중국일 수도 있고,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옷도 있죠. 이렇게 먼 길을 여행하는 옷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동안 계속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을 거예요. 멀리서 오는 옷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서 만들어지는 옷은 없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옷이 이동하는 거리를 줄이는 제작 방식을 고민해 보기로 했어요.
어떤 옷들은 가능한 같은 지역에서 원재료를 수급하고 제작까지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져요. 그 지역에서 소비되기까지 한다면 더욱 좋겠죠.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들어지는 옷을 ‘지역 생산 의류’라고 불러볼게요. 지역 생산 의류는 원재료를 얻어서 옷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요. 옷을 만드는 단계별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뿐더러 지역의 노하우를 계승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있죠. 전통적으로 만들어지는 옷은 대부분 지역 생산 방식을 활용해 왔어요. 과거에는 다른 지역에서 원료를 구해오기도 어려웠을 테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죠. 이렇게 만드는 옷의 예시로는 한산모시나 제주의 갈옷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산모시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만드는 모시 옷감을 가리켜요.[1] 오늘날 충청남도의 전체 모시 생산량 중 한산모시로 인증받는 것은 한산 지방의 157명이 생산하는 모시뿐이라고 해요. 모시의 원재료인 저마는 생육 환경이 까다로워서 서천과 충청도 지역, 전라도 일부에서만 재배할 수 있었어요.[2] 한산 지역은 여름 평균 기온이 높고, 해풍이 불어서 습한 특징이 있어요. 기후적 특징에 비옥한 토양이 더해져서 다른 지역에 비해 품질이 우수한 모시가 자랄 수 있었죠. 모시 옷감은 저마를 꺾어서 그 껍질을 벗긴 것을 재료로 해요.[3] 모시를 수확해서 실로 만들고, 베틀을 이용해 옷감을 짜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한산모시는 전통적으로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제작됐어요.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기술과 경험을 전수하며 이어져 왔죠. 예전에는 마을의 정해진 장소에서 이웃들이 모여 모시를 짜면서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도 했다고 해요.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명인과 전수조교 간의 견습 제도를 통해 전수되거나, 모시짜기를 하는 일반 가정에서 어머니가 딸에게 전수하는 식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지역에서 생산된 모시풀을 이용해서 지역민들이 만드는 옷감인 한산모시는 지역 생산 의류의 한 사례예요.
갈옷은 감물을 들여 염색한 제주도의 전통 복식이에요. 제주도는 감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기후 풍토 덕분에 가정에서 감나무를 기르는 경우가 많았어요.[4] 감물을 들인 옷감은 제주도의 흙 색깔과 비슷한 색이어서 더러워져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아요. 감물 염색을 하면 옷감을 코팅하는 효과가 있어서 더러움을 덜 타고, 가시덤불에 찢기거나 오물이 묻는 일도 적어지죠. 갈옷은 시원하고, 땀이 나도 몸에 달라붙지 않으며 땀이 묻은 옷을 그냥 두어도 썩거나 냄새가 나지 않아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고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최적의 노동복이자 일상복이기도 했어요. 이렇듯 갈옷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제주의 자연환경과 생활 환경에 적합한 옷을 만들어 입은 사례로 볼 수 있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가 지역 생산을 하는 대신 세계 곳곳에서 의류를 제작해요.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글로벌 패션 브랜드는 원자재 생산과 의류 제작, 유통과 판매, 소비가 모두 다른 지역에서, 나아가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죠. 지역 생산 의류가 지역에 꼭 맞는 옷을 만들기에 좋은 방법이라면 왜 지금은 한 지역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일이 적을까요?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전 세계에서 옷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서일 거예요. 유행에 따라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빠른 시간 안에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죠. 브랜드는 가능한 제작비를 줄이려고 하고,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인건비를 줄이는 것 역시 브랜드가 선택하는 방법의 하나예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편법이나 불법을 저지르는 곳도 있어요. 예를 들어,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조사한 결과 의류 하청업체의 80%가 직원에게 최저시급보다 임금을 적게 지급했어요. 최저시급이 15달러인데 시간당 1.58달러를 지급하는 곳도 있었죠.[5] 제작비를 더 줄이기 위해서 패션 브랜드는 인건비가 낮은 나라를 찾아다녀요. 그 과정에서 옷의 생산 과정은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됩니다. 2019년에 국가별 의류업계 종사자의 임금 차이를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권에 비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 국가에서 월급을 훨씬 적게 받는 것을 볼 수 있어요.[6] 벨기에에서 1,764달러를 받을 때 태국에서는 310달러를 받고, 가장 월급이 적은 에티오피아의 직공들은 26달러를 받아요. 벨기에에서 일하는 사람은 에티오피아에서 일하는 사람의 약 68배나 되는 월급을 받는 거죠. 서구의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글로벌 생산을 하는 이유예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옷을 만든 결과, 의류 생산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 되고 있어요. 미국의 연구기관 Pew Research Center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양 운송과 항공 운송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약 3%를 차지하고, 그중에서 2/3 이상이 국제 운송을 할 때 발생해요.[7] 미국의 경영 컨설팅 센터 Mckinsey&Company의 보고서는 패션 산업의 전 과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중에서 운송과 유통 단계가 6%를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죠.[8] 제작 과정에서 원재료와 옷감이 이동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까지 고려한다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패션이 차지하는 부분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질 거예요.
하지만 제작비를 높이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지역 생산을 시도하는 브랜드들도 있어요. 특히 프랑스는 지역 생산 브랜드가 많은 나라 중 하나예요. 프랑스는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은 유럽, 그중에서도 2024년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패스트패션 제한법(Fast Fashion Bill)’을 통과시킨 나라예요. 친환경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지역 생산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베자는 2005년 브라질에서 시작한 공정무역 기반 브랜드예요.[9] 브라질에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프랑스인이 만든 브랜드이기 때문에 브라질과 프랑스 2곳에서 중점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베자의 신발은 브라질에서 소재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특징적이에요. 면 소재는 페루와 브라질에서 수확하는 오가닉 코튼을 사용하고,[10] 가죽은 브라질에서 수급하거나 가까운 우루과이에서 수입하죠.[11] 신발 솔의 20~40%는 아마존의 고무나무로 만들어져요. 브라질에서 수거한 페트병을 이용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B-Mesh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브라질과 근처 국가들에서 얻은 재료를 이용해서 모든 제품을 브라질에서 제작해요.[12] 신발을 제작할 때는 ILO에서 제시하는 노동권 규정을 준수하고 있죠. 최근에는 유럽 시장을 넓히기 위해 유럽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새로운 생산 체인을 만들기도 했어요. 브라질에서 유럽까지 이동하는 거리를 줄이고자 유럽 안에서 지역 생산을 새롭게 시도하는 거예요. 유럽의 생산 체인은 포르투갈에서 신발을 제작해서 유럽 내에서 소비하도록 하고 있어요.
1083은 소비자의 1,083km 내에서 제품 제작의 전 과정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청바지 브랜드예요. 프랑스 안에서 청바지를 만드는 전체 공정을 재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답니다.[13] 먼저 청바지의 주요 소재인 데님의 경우, 오가닉 또는 리사이클 코튼을 사용하며 원사의 73%가 프랑스에서 방적돼요. 나머지 27%는 현재 프랑스에서 방적할 수 없는 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국에 생산을 맡기지만, 가능한 가까운 곳에서 작업하려고 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탈리아에서 생산된다고 해요. 데님이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를 포함하는 경우에는 스페인에 방적을 맡기고 있죠. 염색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진행해요. 아쉽게도 프랑스에서는 인디고 염색을 하는 마지막 업체가 20년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해요. 프랑스 안에서 노하우를 다시 전승하는 동안 잠시 이탈리아 업체를 이용하고 있어요. 프랑스의 염색 공정을 다시 만들려는 노력도 계속해서 이어가면서요. 이렇게 1083은 지역 생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는 브랜드예요.
Jules & Jenn은 프랑스의 신발 브랜드예요. 제품의 40%는 프랑스에서 만들고, 나머지는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스페인에 있는 15개 파트너 제작업체와 협업해서 제작하고 있어요.[14]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지역의 노하우를 전승하고, 가능한 지역 내에서 직공을 고용해서 좋은 근무 환경을 제공하려고 하죠. Jules & Jenn의 홈페이지에는 공급처와 제작 업체, 제작 과정 사진 등이 공개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가죽의 경우에는 유럽 안에서 기른 소의 가죽을 사용하며, 태닝 공정 역시 유럽 안에서 진행해요. 그밖에도 미국의 킨은 미국에서 생산한 울을 사용하는 브랜드예요. 미국산 울을 사용함으로써 미국의 울 산업을 강화하고 운송에 들어가는 거리를 줄이려고 하죠. 다양한 폐기물을 활용해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기도 해요. 킨은 ‘지역을 위한 지역(local for local)’ 개념을 바탕으로 지역 생산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어요.[15]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생산이 가능할까요? 그 답을 찾아보고 싶어서 롱레이블도 지역 생산에 도전해봤어요.[16] 롱레이블과 지속가능 패션 브랜드 오픈플랜, 제리백,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리고 천연염색 기술기업 그린웨어가 함께한 펠리컨 웍스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패션 아이템을 제작하는 시즌제 프로젝트예요. 첫 번째 시즌은 환경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소재로 지역에서 생산하는 러닝 아이템을 제작하고 있어요. 제품 제작의 모든 과정은 국내에서 진행돼요. 지역 생산 방식을 더욱 분명하게 적용하기 위해, 경기도 안의 공장들과 협업해서 경기도에서의 지역 생산에 도전하고 있어요. 프로젝트에 포함된 모자, 양말, 반다나 모두 경기도 안에서 만들어지죠. 나아가 제품에 사용되는 면 소재의 20%는 제주의 호텔에서 폐기되는 면 베딩 제품을 수거해 만든 리사이클 면이에요. 폐기물 발생량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면을 다시 면으로 재활용하면서 새로운 면사를 만들기 위한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어요. 제품과 패키지에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가능한 폐기물을 최소화하도록 만들기도 했어요. 염색 과정 역시 화학물질을 최소화한 천연염색을 사용하거나, 아예 염색을 하지 않는 방식을 적용하면서 염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을 줄이려고 했답니다.
저렴하게 만들어지는 옷은 제작비를 줄이는 대신 다른 대가를 치르게 만들죠. 긴 여행을 하는 옷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생각하다 보면 MADE IN ○○○ 옷을 사는 게 정말 좋은 선택인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돼요. 그럴 때 지역 생산 의류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옷은 지역의 특색을 담아내면서 우리에게 더 잘 어울리는 옷이 될 거예요.
[1] 유네스코와 유산, "한산 모시짜기", <https://heritage.unesco.or.kr/%ED%95%9C%EC%82%B0%E9%9F%93%E5%B1%B1-%EB%AA%A8%EC%8B%9C%EC%A7%9C%EA%B8%B0/>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산모시짜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679> [3] 국가유산진흥원, "한산모시짜기 방연옥", <https://www.kh.or.kr/brd/board/696/L/menu/314?brdType=R&thisPage=1&bbIdx=110567&searchField=titlecontent&searchText=%EC%9E%A5%EC%88%9C%EC%9E%90>,2021.01.21. [4] 현진숙, "고운 감즙을 들인 갈옷", 디지털제주문화대전, <https://jeju.grandculture.net/jeju/toc/GC00700043> [5] Ruben Rosalez, "The Explitation of Garment Workers: Threading the Needle on Fast Fashion", U.S. Department of Labor Blog, <https://blog.dol.gov/2023/03/21/the-exploitation-of-garment-workers-threading-the-needle-on-fast-fashion>, 2023.03.21. [6] Sheng Lu, "Minimum Wage Level for Garment Workers in the World", FASH455 Global Apparel & Textile Trade and Sourcing, <https://shenglufashion.com/2020/12/04/minimum-wage-level-for-garment-workers-in-the-world-updated-in-december-2020/>, 2020.12.04. [7] D. McCollum 외 2인(2010), “Greenhouse Gas Emissions from Aviation and Marine Transportation: Mitigation Potential and Policies”, UC Davis Institute of Transportation Studies, 5면. [8] McKinsey&Company(2020), “Fashion on Climate”, 5면. [9] VEJA, "THE VEJA STORY", <https://www.youtube.com/watch?v=Jv3ZShuPatw>, 2020.04.18. [10] Veja, "Cotton", <https://project.veja-store.com/en/single/coton> [11] Veja, "Leather", <https://project.veja-store.com/en/single/leather> [12] Veja, "Production", <https://project.veja-store.com/en/single/production> [13] 1083, "Fabriquer en France des jeans écologiques", <https://www.1083.fr/filiere-francaise.html> [14] Jules&Jenn,"Idées cadeaux", <https://www.julesjenn.com/> [15] supply chain world, "KEEN Footwear proves to be a pioneer in both shoe technology and sustainability", <https://scw-mag.com/news/keen-footwear-proves-to-be-a-pioneer-in-both-shoe-technology-and-sustainability/>, 2023.08.03. [16] (주)리마인드얼스, "달릴 마음을 응원해! 러닝 메이트 아이템", <https://tumblbug.com/pelican>